어제는 외출을 했다가 오후 7시 45분경에 집으로 돌아 왔다
커다란 둥근달은 중천에 떠 올라 어둠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행복해져서 아파트를 들어 오는데...
아파트 경사로에는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이 힘겹게 내려 오시다가
난간을 붙잡으시더니 엉덩이를 비좁은 난간에 걸터 앉으셨다
늦은 시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본 기억이 별로 없어서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할머니께서는 가쁜 숨을 몰아 쉬시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계셨다
나는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할머니! 이 시간에 어디가세요? " 하고 여쭸더니
경로당에 가신다고 하셨다
"예? ... 경로당요? " ... 나는 말 문이 막혔다
경로당은 오후 5시가 되면 문을 닫는걸로 알고 있는데...
"할머니! 경로당은 벌써 문을 닫았어요" 라고 말을 하자
할머니의 표정은 묘하게 일그러지셨다
황당함과 .... 아쉬움...일그러지시는 표정에 내 마음이 다 무너진다
할머니께서는 아침을 잡숫고 경로당으로 가신다고 나오셨다고 한다
아침이 아니고 저녁이라고... 잠 잘 시간이라고 ...쉽게 설명을 해 드리자
갑자기 쾌심한 표정이 되시더니....
할머니께서 경로당에 가신다고 하고 나오셔도 아무도 말리지를 않았다고 하신다
나는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햇갈렸다
아니겠지... 설마 아니겠지...
캄캄한 밤에 걸음도 잘 못 걸으시는 분이 현관문을 나오시는데
설마 아들 며느리가 그냥 보고만 있었을리는 없다
다른 일을 하느라 나오시는 걸 못 봤겠지...나는 그렇게 이해를 하고 싶어졌다
할머니께서 치매라는 무서운 병에 걸리지는 않으셨는지...
내 가슴을 때리는 묘한 슬픔이 밀려 왔다
할머니에게도 젊음도 있었고 자식을 위해서는 자기 한 몸 아끼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자식을 키웠을 것이다
남은건 병든 육신과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자식들에게 조차
존경 받지 못 하는 처지로 살아 가시는 건 아닌지...
영원한 젊음이 없고 영원한 건강도 없을터...
눈가에 맻히는 눈물을 몰래 훔치고 할머니를 안심을 시켜 드렸다
내 가슴속에 맺히는 비애는 오래 남을 것 같다
자꾸만 경로당에 가야 한다는 할머니를 간신히 달래서
팔을 부축을 해서 엘리베이트 앞에 까지 와서
몇 층에 사시냐고 여쭸더니 2층에 사신다고 하신다
할머니를 모시고 2층에서 내려서 현관까지 배웅해 드리고
돌아서는 내 발걸음은 무거웠다
들어가셔서 아들 며느리에게 싫은 말을 들을것을 생각하니
할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한참이나 서성거리다 돌아 왔다
치매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들의 고생은 말로 다 못한다고 한다
내 친구중에도 시어머님이 치매에 걸려서 밤 낮도 없이 잠을 주무시지도 않고
보따리를 싸서 들고 어디를 가야 한다며 자꾸만 집 밖을 나가서
온 동네를 이 잡듯이 할머니를 찾으러 다닌다고 한다
24시간 내내 할머니를 지키느라 잠을 잘 수도 없어서
교대로 할머니를 지킨다고 했다
손녀도 직장에 가야 하고 며느리는 사업장에도 가야 하기 때문에
환갑이 다 되어 가는 아들이 어머님을 지켜야 했다
수척해가는 내 친구 신랑도 안쓰러웠다
10여년을 그런 생활에 자식들이 견딜수가 없어서
노인병원에 입원을 시켜 놓고는 내 친구는 마음이 아파서 내내 울었다
맞며느리라는 책임감과 자식의 도리로 효도를 다 하고 싶었는데
인내의 한계에 부딪치니 어쩔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픈 사람을 돌보다 성한 사람이 돌아 버릴것 같다고 했다
많은 형제들이 있지만 평소에는 관심조차도 없더니
노인 병원에 입원시킨게 아주 큰 불효라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큰 아들 큰 며느리가 고생을 할때는 입을 딱 다물고 눈도 감고 있더니
이구동성으로 공격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어머님을 병원에다 모실수 있냐며 ...
특히 시누이는 대놓고 그럴줄 몰랐다고 원망을 퍼 부었댔다고 한다
다 같은 여자의 입장이고 ...딸이 되기도 하고 며느리도 된다
딸의 권리와 며느리의 책임감이 어떻게 다르다는 말인가
딸의 권리로써 친정의 대소사(大小事)에 일일이 참견을 한다면...
그 딸도 또 다른 가정의 며느리가 되어서 시누이의 간섭을 좋아할까?
더도 말고 내 친구처럼만 부모를 공경하고 동기간에 잘 한다면
아무리 세월이 달라졌다고 해도 효부상을 받을 것이다
남남이지만 한 남자와의 인연으로 가족으로 만나서 30여년을 부대끼며 살아왔는데
진실하고 순수하고 착한 사람의 진심을 그리도 모를수 있다니...
항상 변함없이 어른들에게 다정다감하고 자신을 낮추며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폈다
제발 ... 여자들만이라도 서로를 보듬어 주고 이해를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시누이는 몇 달이 흐른후에 내 친구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다고 한다
장남...맞며느리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우리네 현실인가 보다
늘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은 나는 맨발을 벗고도 못 따라 간다
.
.
.
.
"할머니" ....
오늘은 비도 그치고 날씨도 좋아요
아파트 경노당이 문을 열 시간이예요
지금 나오시면 제가 경노당에 모셔다 드릴께요
가만가만히 지팡이를 짚어시고 나오셔요
경노당에 저랑 같이 가요...
어머니- 이해인
당신의 이름에선
새색시 웃음 칠한
시골집 안마당의
분꽃 향기가 난다.
안으로 주름진 한숨의 세월에도
바다가 넘실대는
남빛 치마폭 사랑
남루한 옷을 걸친
나의 오늘이
그 안에 누워 있다.
기워 주신 꽃골무 속에
소복이 담겨 있는
유년(幼年)의 추억
당신의 가리마같이
한 갈래로 난 길을
똑바로 걸어가면
나의 연두 갑사 저고리에
끝동을 다는
다사로운 손길
까만 씨알 품은
어머니의 향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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