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시 130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 이해인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 이해인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달려오는가 함께 있을 땐 잊고 있다가도 멀리 떠나고 나면 다시 그리워 지는 바람 처음 듣는 황홀한 음악처럼 나뭇잎을 스쳐가다 내 작은 방 유리창을 두드리는 서늘한 눈매의 바람 여름 내내 끓어오르던 내 마음을 식히며 이제 바람은 힌 옷 입고 문을 여는 네게 박하 내음 가득한 언어를 풀어 내려하네 나의 아침까지도 이해하는 오래된 친구처럼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더 넓어지라고 하네 사소한 일들은 홀홀 털어 버리고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더 넓게 크게 웃으라고 하네

영상&시 2015.08.15

그대는 아는가 - 이정하

그대는 아는가 이정하 그대는 아는가, 만났던 날 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그대와의 만남은 잠시였지만 그로 인한 아픔은 내 인생 전체였었다 바람은 잠깐 잎새를 스치고 지나 가지만 그 때문에 잎새는 내내 흔들린다는 것을 아는가 그대, 이별을 두려워했더라면 애초에 사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이별을 예감했기에 더욱 그대에게 열중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상처입지 않으면 아물 수 없는 것 아파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네 만났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여 진정 아는가...

영상&시 2015.06.21

미소 띤 얼굴은 아름답죠 - 이해인

미소 띤 얼굴은 아름답죠 詩. 이해인 수녀 미소는 전혀 비용이 들지 않고 많은 것을 낳습니다. 받는 자는 풍요로워지며 주는 자는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지속되지 않는 순간의 행위지만 기억속에 영원히 존재하는 깊은 애정의 정감 어린 표현입니다. 어떤이도 미소 없이 지낼 수 있을만치 넉넉하지도 않으며 어떤이도 그걸 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습니다. 미소로 인하여 피곤한 이는 휴식을 낙담한 이는 용기를 얻으며 슬픈 자는 위안을 받습니다. 미소는 선(善)입니다. 행해지는 그 순간부터 가치를 지니는... 행여 미소를 주지 않는 사람을 어디선가 만나거든 관대해지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미소를 선물하십시오. 그것은 그것을 줄줄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미소가 절실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상&시 2014.10.09

가을의노래 - 김대규

가을의 노래 - 김대규 떠나지는 않아도 황혼마다 돌아오면 가을이다. 사람이 보고 싶어 지면 가을이다.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대로 있으면 가을이다. 가을에는 마음이 거울처럼 맑아지고 그 맑은 마음결에 오직 한사람의 이름을 써 보낸다. '주여'라고 하지 않아도 가을엔 생각이 깊어진다. 누구나 지혜의 거름이 되어 경험의 문을 두드리면 외로움이 얼굴을 내밀고 삶은 그렇게 아픈 거라 말한다. 그래서 가을이다. 사자의 눈에 이윽고 들어서는 죽음은 사자들의 말은 모두 詩가 되고 멀리 있는 것들도 시간 속에 다시 제 자리를 찾는다. 가을이다. 가을은 가을이라는 가을이라는 말속에 있다.

영상&시 2014.10.02

마음이 마음에게 - 이해인

마음이 마음에게- 이해인 내가 너무 커 버려서 맑지 못한 것 밝지 못한 것 바르지 못한 것... 누구보다 내 마음이 먼저 알고 나에게 충고하네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다 욕심이에요. 거룩한 소임에도 이기심을 버려야 순결해진 답니다. 마음은 보기보다 약하다구요 작은 먼지에도 상처를 받는다구요. 오래 오래 눈을 맑게 지니려면 마음 단속부터 잘 해야지요. 작지만 옹졸하진 않게 평범하지만 우둔하진 않게... 마음을 다스려야 맑은 삶이 된다고 마음이 마음에게 말하네요

영상&시 2014.02.23

여름엽서 - 이외수

여름엽서 이외수 오늘같은 날은... 문득 사는 일이 별스럽지 않구나 우리는 까닭도 없이 싸우고만 살아왔네 그 동안 하늘 가득 별들이 깔리고 물 소리 저만 혼자 자욱한 밤 깊이 생각지 않아도 나는 외롭거니 그믐밤에도 더욱 외롭거니 우리가 비록 물 마른 개울가에 달맞이꽃으로 혼자 피어도 사실은 혼자이지 않았음을 오늘 같은 날은 알겠구나 낮잠에서 깨어나 그대 엽서 한 장을 나는 읽노라 사랑이란 저울로도 자로도 잴 수 없는 손바닥 만한 엽서 한장 그 속에 보고 싶다는 말 한 마디 말 한 마디만으로도 내 뼛속 가득 떠오르는 해

영상&시 2013.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