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밤의 푸념
밤잠을 설치게 하던 무더위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풀숲에서 처량하게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는
가을을 가슴에 담으라는
신호인가 보다.
이토록 고요하고
아름다운 가을밤에
며칠전의 경주지진은
떠 올리기도 두렵다
갑자기 지축이 흔들리고
모든 물건들이
제 멋대로 흔들린다
경쟁이라도 하듯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고층 아파트들
고층 아파트가 마구 흔들린다
식탁을 부여잡고 섰는
나도 흔들리고 전등도 춤을 춘다
두려움은 온 몸을 감싸고
자연의 재앙앞에
대항할 자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다리는 후들거리고
숨은 턱에 걸려 헐떡이고
어지럽게 돌아가도 끝이 없는 계단들
모든것 다 내려놓고
살고 싶은 욕망 하나를 부여잡고
뛰고 또 뛰고
걱정이 되어서 뛰어 올라와
2층에서 마주친 딸과의 해후
우리는 반가움에 두 손을 부여잡고
통신이 두절된 잠깐 동안의 막막함이
놀라서 두려웠고
서로의 안부를 몰라서 여기저기서
전화가 온다
전쟁이 따로 없구나
통신두절이라서 전쟁이고
길이 막혀서 전쟁이고
집에 들어가기가 두려운게 전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