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흔적

자연과 더불어 절까지 9분만 걸어 봅시다(석남사)

해피 소이 2011. 10. 31. 11:08

 

 

 

 

바람소리와 나무 내음새가 코끝을 스치고...

나뭇잎은 하늘을 가려주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으리...

눈을 살며시 감고 걸어도 좋은데...

내 발자국 소리조차 소음으로 들려오는 경건함에 흩어졌던 마음 주워 담는다

 

 

 

 

 

스님들이 직접 경작을 해서 싱싱한 채소들이 공양을 하는 대중들의 입맛을 돋구게 한다

특히 상추쌈의 맛은 일품이다

 

 

 

하늘을 가려주는 푸르름이 곧 붉은 단풍으로 옷을 갈아 입겠지

 

 

원래 호중당 자리에 있었으나 2003년 이곳으로 이전하였으며, 형태는
주심포계 양식의 맛배지붕이고, 정면2간 측면1간의 단층으로 되어있다.

조사전은 역대 조사나 그 종파의 조사스님, 사찰의 창건주, 역대 주지스님 등 해당사찰과 관련하여

후세에 존경받는 스님들의 영정이나 위패를 모신 전각이다.

 

초등학교 소풍을 종종 왔었는데 보물찾기할때 고목나무 밑에..

나무속에서 보물을 찾기도 했다

추억의 그곳에는 시간은 정지돼 있었다

 

 

 

 

 

 

맑은 물이 콸콸 흐르는 곳인데 가을 장마에 계곡물이 많이 줄었다.

 

 

몇년전 태풍에 쓰러져서 가지가 꺽였는데 그래도 잘 살아 가고 있다... 마음이 짠해진다

  

 

석남사(石南寺): 청운교(靑雲橋)

 

 일주문을 지나 가람으로 들어가는 덕현천 입구에 청운교가 있다.

 이는 중생이 불보살을 편안하게 참배할 수 있도록 1931년에 건립했지만 

 2006년 에위니아 태풍때 교량 일부가 파손돼 재해복구사업으로 교체된 것이다

 청운교는 일주문 외에 사찰의 가람을 경계 짓는 상징적인 석조물로

 이 다리를 건너야만 불보살의 세계인 피안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나타낸다.

즉 열반의 언덕에 도달하기 위한 피안교(彼岸橋)의 의미와 함께

다리를 건널 때 세속의 마음을 청정하게 씻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빨간색의 물바가지가 유난하게 눈에 들어 온다 산새도 쉬었다 가는 곳...

 

 

간절한 소망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은 돌탑으로 탄생되었다

  

 

 

일주문 지나 약 150m 정도 걸으면 도로의 남쪽에 위치한 부도 밭에 특이
양식의 부도가 있다. 조선 중기 이후 석남사에 주석하신 명등들을 모신
것으로 연대는 1741~1802년 사이에 4기의 부도가 건립되었다.


 

 

 

 
 

 

 
 
 



석남사 

석남사는 불자들에게는 국내외 가장 큰 규모의 비구니 종립특별선원(宗立特別禪院)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울산사람들에게는 늘 열려있는 휴식처로서 늘 푸르른 산림과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을 제공하며 한겨울에는 가지산의 설경과 어울려 가람을 하얗게 덮은 눈은 우리들에게 절경을 보여줍니다.


 


위 치

  
석남사(石南寺)는 가지산(迦智山)동쪽 기슭, 울산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 위치한 절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입니다.
  고헌산맥은 저 멀리 강원도 태백산맥이 남쪽으로 뻗으면서 줄달음질을 치다가

  도중에 경상북도 청도의 운문산을 형성한 뒤

  다시 뻗으면서 형성되는데, 가지산, 신불산, 간월산, 천황산, 영취산 등의 영산 명봉들을 이루어 놓고 있습니다.

 
 

 가지산에는 석남사, 신불산에는 간월사, 영취산에는 통도사 등의 신라 명찰이 들어 앉게 되었으니

 불심과 영통한 법운 영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 칭

  석남사(石南寺)란 이름은 가지산(迦智山)을 석면산(石眼山)이라고 하는데

  이 산의 남쪽에 있다해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가 람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 극락전 · 강선당(講禪堂) · 조사전(祖師殿) · 심검당(尋劍堂) 등 30여 동이 있으며,

  가장 오래된 건물로 1791년(정조 15년)에 세운 극락전이 있으며 다음 가는 건축물로는 순조 3년에 세운 대웅전입니다.
  이 외에도 문화재로 도의국사 사리탑으로 전해지는 보물 제369호 석남사 부도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인 삼층석탑,

  조선 초기의 엄나무구유 · 돌구유 등이 있습니다.


 

창 건 

헌덕왕(신라제41대憲德王 서기809-826)에 한국에 최초로 선을 도입한 도의국사 (道義國師)가 일찌기 영산 명지를 찾다가

이 곳 가지산의 법운지를 발견하고 터를 정한 뒤, 신라의 호국을 염원기도하기 위해 창건하셨습니다.
도의국사는 신라 제 37대 선덕왕 1년에 당나라에 건너가서 지장의 제자가 되어 그 불법을 물려 받고 법호를 도의라고 개명한 뒤

821년에 신라로 금의환향하여 최초로 선문을 개설하여 우리나라의 남종선의 시조가 되었으나

고국에서는 아직 그의 혁신 이념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설악산 진전사(陳田寺)에 들어가 제자를 기르며 때를 기다리다가

3년만에 석남사를 창건하고 가지산파의 개조가 되었습니다.


 

중건중수

 

창건이후 여러 차례 중건중수(重建重修)를 거듭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그 후 1674년 (현종 15년) 언양현감 강옹(姜甕)의 시주로 탁영(卓靈), 자운(慈雲), 의철(義哲), 태주 (泰珠)가 중창하였고, 진혜(振慧). 쌍원(雙遠). 익의(益儀). 성진(性眞)이 단청하였으며, 동시에 종과 북 등의 불구(佛具)를 마련하였습니다. 이어 정우(淨佑). 각일(覺日). 석맹(碩孟) 등이 극락전.청풍당. 청운당. 청화당. 향각(香閣)을 증축 하였고, 희철(熙哲)선사가 명부전을 세웠습니다. 1803년(순조 3년)에 침허(枕虛), 수일(守一)선사 등에 의하여 중수되었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황폐해졌다가 1912년 우운(友雲)스님에 의하여 다시 중수된 바 있으나 한국전란으로 폐허가 되어 그나마 남아있던 신라고찰의 모습이 모조리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현 재

 

이렇게 폐허가 된 것을 1957년 비구니(比丘尼) 인홍 (仁弘)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먼저 대웅전, 극락전, 그 밖의 부속시설을 중수중창을 하고 다음에 종각, 침계루, 심검당 등을 신축하여 사찰의 면모를 일신케 하였다. 크게 각 당우를 일신하여 현재에 이르렀으며, 이때부터 비구니들의 수도처로서 많은 비구니들의 정진하는곳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의 삼층석탑은 824년에 도의가 호국의 염원아래 15층으로 세운 것이라 하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방치되어오다가 1973년 스리랑카의 승려가 사리 1과를 봉안하면서 3층으로 개축한 것입니다.

 
     자료:[석남사 홈페이지] 중에서
 
 

 

 

 

잊혀진 계절 - 이용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나를 울려요



가사 출처 : Daum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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