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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鄕愁)

해피 소이 2007. 3. 31. 08:38

 

정지용 : 향수(鄕愁)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집필 의도 및 감상

        고향이란 인간의 원초적(原初的) 생(生)의 뿌리이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영원한 안식처이다 .
        그러므로 시인이 고난과 시련의 현실에 놓여 있을 때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과거의 고향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 시는 정지용이 일본 동지사(同志社)
          대학 재학 시절에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국 땅에서 낯선 환경 속에 생활하며
          유년 시절에 겪은 여러 추억과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이 시를 쓰게 한 배경이라 할 것이다
          .
              토속적인 어휘와 창가조(唱歌調)의 구성 형태를 취하면서도
              표현에 있어 감각적 심상을 사용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감정의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모든 정서를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처리한 것은
              이 시가 한국 시사(詩史)에 있어 한 단계 발전했음을 보여 준다.
              정지용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지만 시 <향수>의 고향 배경은
              외갓집이 있었던 충북 옥산면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옥천’에는 넓은 벌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튼 시 <향수>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고향의 근원적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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