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흔적

야경과 반영이 아름다운 경주 안압지

해피 소이 2012. 4. 22. 00:45

 

 

 

 

 

 

 

 

 

 

 

 

 

 

 

 

 

 

 

 

 

 

 

 

 

 

 

 

일제시대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안압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寶相華)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안압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고려 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의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

"안압지의 서에는 임해전이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어 현재의 자리를 안압지로 추정하고 있다.

 

 

 

오후 9시20분에 도착한 안압지에는 도로에까지 주차를 하고 있었다

다행히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는 성공을 했는데... 

입장료를 사는데도 줄을 서야했다

이게 무슨일이야?

집에는 언제 갈려는지...무슨 사람들이 대낮같이 대성황이다

입장을 해서 들어가니 캄캄한 야밤에...

떼지어 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내 눈이 휘둥그레진다

사람들은 물결을 이루고 저마다 야경에 흠뻑 취해 있는 모습들이다

도도하고 아름다운 조명을 받은 임해전은 신비속에...

통일신라의 위용을 위엄있게 감추고 있는듯하다

연못속에 비친 임해전의 반영이 환상적이서 탄성이 터져 나올것만 같다

차마 숨소리마져 크게 낼수 없는 고즈넉함에 취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건축물과 야경이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하면서 천년의 고도인 신라의 숨결이 전해져온다

비록 내가 그 시절에는 안 살아봐서 연회장의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상상력을 총동원을 해서 내가 주인공이라도 된양 착각에 빠져보기도 한다

신라의 기운을 듬뿍 느끼고 싶어서 연못을 한바퀴 돌면서 찬찬이 둘러봤다

황후가 아니여도 좋고...궁녀가 아니어도 좋고...

소시민의 발자국이라도 남기며 걸어보는데 그런데로 괜찮았다

중학교 수학여행때 거닐던 안압지를 성인이 되어서 걸어본다

그때는 아무런 감동도 못 느끼고 줄지어서 걷던 그 곳에서...

추억 한자락을 남기고...남겨진 추억도 뒤돌아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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